맺는 말

뭇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남자가 온종일 일을 한다.
구매자들은 누구나 가서 앉을 수 있고 그늘에서,
마실 차나 커피를 받고서 일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이것은 소박한 생(生)에 대해서 호의를 느낀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은 필요한 물건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은 자기들의 음식과 의복이 어디서 왔는지
모를 뿐 아니라, 그들의 상상력을 그릇된 곳에 몰두시키는 장난감을
들린 채 쫓겨 보내진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이미 그르쳐지니,
그들의 지식엔 전혀 기반이 없게 되는 것이다.
-- 잉게보르크 바하만, ``프란짜의 죽음'' 중에서, 1966년

GPL은 자유 소프트웨어를 담는 그릇이며, GPL 벤치마크는 그러한 그릇의 모양을 평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박스 포장의 외부나 매뉴얼 첫장 안에 표시된 글자 몇 자가 무엇이 중요하며, 말장난과 같은 기준들이 정말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반문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릇은 그릇을 만드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개성 있게 표현될 수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릇이 그릇으로서 인식되기 위해서는 누가 보더라도 그것이 그릇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끔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GPL 벤치마크는 이러한 취지에서 한번쯤 같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꺼리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이제는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부르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초등학교라는 말이 일상적인 말이 되어버렸지만, 국민학교라는 -- 어떻게 보면 이 하찮은 단어 하나를 초등학교라는 말로 바꾸기 위해서 40여 년이 넘는 세월과 논쟁이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 단어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으며 과연 잘 쓰고 있던 말을 바꿔야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요? 리눅스를 알고 또한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 소프트웨어와 GPL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모습과 형태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또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차이는 마치 국민학교와 초등학교와의 차이와 같은 것입니다.

원칙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보다 빠른 길과 높은 곳으로의 욕심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지만, 원칙이 있는 삶은 이미 그 자체로 우리에게 훌륭한 길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 목록 페이지로 돌아갑니다. ]